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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감동, 그리고 예수 - feat. Pulitzer Prize (퓰리처상)

Godpel/글

by Araunah 2022. 6. 2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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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과 돈, 사회적 상황과 정치적인 요인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야 움직인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들면 그 다음에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사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진은 사실을 담는다. 합성 뽀샵을 엄청나게 하지 않는 이상 그냥 사실이 찍힌다. 
그래서 내 얼굴을 보면 화가 나고, 뽀샵을 하고 나면 평안이 임한다. 
기술이 좋아질수록 사실을 더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기술이 좋아질수록 모공이 잘 보이고 지저분한 구석도 많이 담길 수 있다. 과거에는 내 집구석이 사진에 찍힐 일이 없었다. 적어도 내 때는 그랬다. 집에 쥐가 돌아다니고 바퀴벌레와 동행하여도 그걸 사진에 찍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찍었다해도 온세상에 자랑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집에서 화장하는 과정 하나도 실시간 방송을 할 수도 있고, 그냥 술마시고 노는 것도 라이브로 공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싫어한다.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와 그림 같다.” 라는 느낌을 받고 싶어하고, 사실을 사진처럼 미화시킬 때 보기 좋다고 느낀다. 그래서 휴대폰의 카메라가 좋아질 수록 더 많은 앱이 생기고 어플의 기능도 다양해진다.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는 사진이라는 영역과 매우 강력한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가 엄청 좋아졌는데, 올드하게 찍혀야 좋아한다. 내 얼굴도 사실적으로 보정하지 않고, 내 다리 길이도 사실적이지 않아야 당당하게 공유를 한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사실적인 사진보다는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사진이 살아남는다.
사실과 이성의 작용이 중요하다면 거무죽죽한 내 얼굴에 잡티가 생생한 사진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야 한다. 난 진실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적인 사진을 찍고도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인정을 받으며 이곳저곳에서 공유가 되는 그런 사진이 있다. 퓰리쳐상, 영어로 퓰리퍼 프라이즈라는 상이 있는데 이 상을 받는 사진들이 그런 사진이다.


퓰리처상(Pulitzer Prize)은 미국의 신문 저널리즘, 문학적 업적과 명예, 음악적 구성에서 가장 높은 기여자로 꼽히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917년 미국의 언론인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언에 따라 제정되었으며, 뉴욕 시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교 언론대학원 퓰리처상 선정위원회에 의해 관리된다. 현재는 매년 21개 부문에서 수상이 이루어지며, 수상자는 인증서와 함께 미화 1만 달러를 받게 된다. (by WIKI)

 

이 사진은 보도 윤리를 이야기 할 때 종종 등장하는 유명한 사진이다.

케빈 카터는 1993년 남수단 분쟁지역에서 이 사진을 찍고 다음 해에 퓰리처 상을 수상한다. 사람들은 소녀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는' 윤리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에 대해서 변호했고, 심지어는 뱅뱅클럽이라는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그의 수단 취재에 동행했던 동료 실바의 증언에 따르면, 한 소녀가 급식센터로 가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으려고 쭈그리고 앉을 때 독수리 한마리가 내려 앉았고 그는 이미 셔터를 눌렀다. 그는 독수리가 날개짓을 하면 더 완성도 높은 사진이 될 것 같아 20분을 더 기다렸지만 독수리가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더 기다리지 않고 독수리를 쫓아 냈다. 그 소녀는 다시 일어나 급식센터로 어렵게 걸어갔다. 그 뒤 케빈 카터는 나무아래 주저 앉아 줄담배를 피며 '오~ 하느님...'이라고 중얼거리며 울기 시작했고 딸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http://content.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165071,00.html 

 

The Life and Death of Kevin Carter

The Life and Death of Kevin Carter

content.time.com

 

이 사진을 찍었던 케빈 카터는 서른의 나이에 자살을 선택했다. 그의 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I'm really, really sorry. The pain of life overrides the joy to the point that joy does not exist. ...depressed ... without phone ... money for rent ... money for child support ... money for debts ... money!!! ... I am haunted by the vivid memories of killings & corpses & anger & pain ... of starving or wounded children, of trigger-happy madmen, often police, of killer executioners ... I have gone to join Ken (Ken Oosterbroek) if I am that lucky.”

그의 상황과 유서의 내용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그의 죽음이 단순히 우울증이나 자책감, 또는 경제적인 문제만으로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곡되고 굴절된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인간의 고통은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웹사이트를 검색하면 케빈 카터의 죽음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정확하지 않은 결론이 많았다. 그래서 카터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친구였고 남아공에서 함께 보도사진을 찍던 '켄 오스터브룩'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스터브룩은 요하네스버그에서 동쪽으로 25km(16마일) 정도 떨어져있는 토코자 마을에서 사진을 찍던 중에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처음으로 모든 인종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1994년 4월 2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총선거를 9일 앞둔 날이었다. 그와 다른 사진작가들은 평화유지군과 ANC 사이의 충돌을 취재하는 중이었다. 평화유지군은 오스터브룩과 뱅뱅 클럽의 다른 멤버인 그렉 마리노비치를 향해 발포했다고 한다.

4월 27일 켄이 죽고 정확히 3개월 뒤에 캐빈 카터는 자살을 선택했다. 누구의 총에 맞았는지 드러나지 않았지만, 1999년 2월 14일,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유엔 평화유지군의 한 사람이 양심선언으로 그를 쏜 총알은 평화유지군의 것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케빈 카터는 " ... 내가 운이 좋다면 켄의 곁에 가있을 것이다."라는 유서를 남겼던 것이다.

케빈은 오스터브룩이 죽은 뒤에도 총에 맞아야 할 사람은 자신이라고 이야기했다는 말이 있다.

 

남아프리카의 혼란과 암울한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자라난 젊은이들, 그들이 겪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극적인 내용일지 몰라도 우리는 세상의 어둡고 소외된 곳에 관심을 가지지 못할 때가 많고,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난민들의 고통에 동참했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부 수단의 참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프리카는 돕고 구호활동이 일어나는데 분명한 영향을 주었다. 그저 한 컷에 사실을 담은 그림이지만, 그 속에 이야기를 담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감동과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는 일들이 있다는 말이다. 

 

베트남의 거리에서 벌어진 이 처형장면은 충격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사진에도 숨겨진 스토리가 있었고 뒷이야기를 들으면 우리의 마음이 숙연해진다. 1950년 대동강철교를 건너는 사람들을 그대로 담은 이 사진은 다음해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아름답고 보기 좋아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때 전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들은 한국전쟁에 참여해서 피와 땀을 흘렸다. 소중한 젊음을 던져버리고 이데올로기와 가치, 신념,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싸웠다. 누가 옳고 그릇되었는지 판단하기 전에, 그들이 움직였고 반응했다는 것에 주목하자.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구호물자와 봉사활동 등으로 우리 나라에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어쩌면 저 한 장의 사진은 그 위대한 움직임에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망쳤던 사람들, 이데올로기와 전쟁에 희생된 가족과 어린아이들, 그들을 돕고 살리고자 한 마음은 처절하고 흉물스러운 현장을 담은 사진 뒤에서 피어났다.

 


 

충격적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도 충격적이기 때문에 기억할 뿐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충격적인 현장의 목격자들에게는 전달하고 싶은 간절한 무엇이 있었고, 예수님이 처형되던 충격적인 현장의 목격자들도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한 복음의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다.

 

무언가에 감동을 받은 사람은 움직인다. 그리고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믿음은 감동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죄의 용서, 사랑, 희생과 변화, 그리고 부흥, 이런 것들이 기독교의 키워드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감동이라고 하고 싶다. 감동을 빼놓고는 기독교와 성경, 신앙을 말할 수가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영리라는 책자가 있다.
이 책에는 네 가지 원리가 적혀 있는데, 사실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하고 움직이는데 목적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선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이렇게 말하고 시작한다. 철부지 아이에게도, 다 늙어버려서 죽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노인에게도 계획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당신은 그 계획과 꿈을 몰랐을 뿐인데 이제 알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게 있는데 왜 나는 몰랐냐고 반문하기도 전에, 죄가 우리를 하나님과 단절시켰다고 알려준다. 그리고는 그 죄 때문에 나를 대신해서 죽은 예수를 소개한다.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당신의 모든 것이 회복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사영리가 감동을 주어서 움직이는데 목적이 있다고 언급한 것은, 그 다음의 두 가지 그림 때문이다.

첫째는 의자 그림, 둘째는 기차 그림이다. 의자를 보여주면서 하나님이 당신 인생의 주인 되면 좋다고 유혹한다. 그렇지만 정말 정상적인 불신자들은 시덥지 않은 반응을 보이기가 쉽다. 와! 하고 감동을 받는 사람이 좀처럼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 잘 안 넘어가면 감정에 속지 말라고 부추긴다.  사영리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해학적인 차원일 뿐...  다음의 기차 그림은 소위말하는 이성적인 접근을 한다. 감정에 속지 말고 사실과 믿음에 따라 움직이면 감정은 뒤따라온다는 설명이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성경을 사실로 믿고 그런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1원리부터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부추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놀라운 존재로 대하고 있고 그런 꿈과 계획이 있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으니까, 또 나를 대신해서 모든 죄값을 치르고 죽은 분이 있다는 것만큼 감동적인 일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실이기에 앞서 우리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접근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때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회라는 곳에서 설교를 들으면 일상적으로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기도의 시간에 이성을 지키지 않고 감정에 복받쳐서 감동을 받은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의 기록과 역사적인 사실에 기인하여 그것을 인정하고 이성과 지식으로 인식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실제로는 그 외의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또는 종교적인 사실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충동을 느끼고 반응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감정에 복받쳐서 눈물을 흘리고 격한 감동과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바로 그런 일들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말한다. 아니, 우리에게 충분히 그러한 감동을 전달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또한, 유다에서도 역사하셔서, 왕과 대신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전한 그 명령을 유다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따르도록 감동시키셨다.” (역대하 30:12, NKSV)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왕위에 오른 첫 해이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조서로 써서 돌렸다.” (에스라 1:1, NKSV)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왕위에 오른 첫 해이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조서로 써서 돌렸다.” (에스라 1:1, NKSV)

 

감정을 고취하고 감동을 주는 방법이 과도하고 비이성적인가?

나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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