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동시대의 랍비 가운데는 Shammai Ha-Zaken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번은 어떤 이가 샴마이에게 토라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해 줄 것을 부탁했는데, 샴마이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랍비 Hillel 은 한 문장으로 그 사람을 개종시켰다고 한다. 힐렐은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네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크레도(Credo)는 전혀 다르다. 누군가 우리에게 복음을 한마디로 요약해 줄 것을 부탁한다면, 성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신앙고백에 나오는 "크레도"가 신앙고백의 대상, 곧 예수와의 관계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 스캇 맥나이드, 예수신경 중에서 -
크레도(Credo): "나는 믿습니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라틴어로서 '신앙고백' 또는 '신경'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도신경이다.
1. 당시 팔레스타인의 바리새파 중에는 힐렐 학파(베이트 힐렐)와 샴마이 학파가 있었는데, 샴마이는 샴마이 학파(베이트 샴마이)의 창시자 이다.
2. 샴마이는 이방인들과 일체 접촉하지 않았으며, 모세 율법에 대한 엄격한 해석과 로마 정부에 대항을 주장하였다.
3. 초기 산헤드린의 의장은 대제사장이었으나 BC 1세기 후반부터 특출한 율법학자들인 힐렐과 샴마이 그리고 그 제자들이 서서히 중심세력으로 떠올랐다.
4. 샴마이와 힐렐은 당시에 내려오던 오경(The Written Torah)과 구전전승(The Oral Torah)의 법률적인 해석에 독보적인 스승들이었고, 그들 문하에서 수학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전역과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몰려왔다. 이중에 힐렐 학파, 그의 손자인 가말리엘의 문하생 중, 수제자가 바로 사도 바울인 것이다.
5. 예수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힐렐이 대 산헤드린의 의장직을 점유하면서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다.
6. 샴마이 학파는 로마 지배에 폭력적으로 항거한 유대교 종파의 하나인 열심당(Zealot)과 연합하여 한동안 산헤드린을 장악하였다.
7. 한 때는 힐렐 학파보다 샴마이 학파의 엄격한 해석 방법이 유대인 사회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AD 70년, 성전이 파괴된 후에 힐렐의 온건한 견해가 주도하였으며, AD 90년, 야브네(얌니아) 종교회의(랍비회의)에서는 힐렐 학파의 관점이 정통이라고 결정하였다.
8. AD 70년 이후에는 바리새파와 서기관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용례에서 사라지고 랍비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9. 샴마이 학파는 유대 율법을 엄격하게 문자 그대로 해석할 것을 주장하였고 반면에 힐렐 학파는 유연한 해석을 주장하였으며, ‘의도의 원리’, 인간의 행위의 율법적인 결과는 틀림없이 부분적으로는 그 사람의 의도에 근거한다고 주장하였다. 샴마이 학파는 이에 반대하였다.
10. 힐렐과 샴마이는 쉐마이어(Shemaiah)와 아브탈리온(Abtalyon)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1. 산헤드린의 지도자들인 힐렐과 샴마이는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이다.
12. 힐렐은 산헤드린의 의장(나시)으로, 샴마이는 대법원장(아브 베이트 딘)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13. 탈무드 하기가 5:2, 쉐마이어와 아브탈리온의 다른 제자인 므나헴이 법원장으로 있었는데 므나헴이 정부 관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 때 샴마이가 므나헴의 자리를 대신하여 법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14. AD 70년,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는 성전, 제사 중심의 유대교에서 율법 중심의 유대교로 전환되어 유대 사회에 주어졌던 율법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다.
15. AD 10-220년을 탄나임(Tannaim)시대 라고 부르는데 ‘탄나(Tanna)’는 선생이라는 뜻으로 랍비 선생을 뜻하며 이 단어의 복수형인 탄나임은 이 시대에 구전으로 전승되던 율법과 그 뜻을 가르치고 이를 문서로 기록했던 대표적인 랍비들을 뜻하는 것이다. AD 200년경, 구전으로 전승되어 내려오던 구전율법이 랍비 유다 하나시가 문서로 기록하였는데 이것이 미쉬나(Mishina)이다. 그래서 탄나임시대는 미쉬나시대라고 불리며 약 120명의 탄나임들이 알려져있다.
16. 또한 탄나임들은 토라(오경)에 대한 해석에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 그 기록들을 미드라쉬(Midrash)라고 한다.
17. 미드라쉬는 크게 율법에 대한 해석인 할라카(Midrash Halakha)와 그 이외의 이야기에 대한 주석인 미드라쉬 하가다(Midrash Hagada)로 나누어진다. 출애굽기에 대한 미드라쉬(주석)은 ‘메길타(Mekhilta)’라 하며, 레위기는 ‘시프라(Sfra)’, 민수기와 신명기는 ‘시프레(Sifre)’라고 한다.
18. 1세기의 율법 연구의 중심으로 부상했던 율법 학자인 힐렐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의 제자들이 탄나임의 시초가 되었고, 이후의 광범위한 유대주의의 역사의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을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라고 부른다.
19. 유대전승에 의하면 예수를 따르던 유대인들은 1차 유대독립전쟁에 동참하기를 거부하고 예루살렘을 떠나 현재 요르단의 펠라로 도피하였으므로, 성서학자들은 얌니아회의에서유대주의가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을 저주하고 배척하였으며, 그 후로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던 사람들은 독자노선으로 갔다고 본다.
20. 탈무드는 미쉬나(반복, 구전율법)+게마라(주석, 랍비들의 해설)으로 되어 있다.
21. 예루살렘 탈무드(Jerusalem Talmud) 또는 팔레스타인 탈무드: AD 4세기경(AD 350)에 전통에 따르면, 랍비 무나와 랍비 요시에 의해서 집성되어 편찬되었다. 이것은 아모라임에 의해 티베리아스 학파와 세포리스학파, 가이사리아 학파의 가르침을 집성한 것이다.
22. 바빌로니아 탈무드(Babylonian Talmud): AD 5세기경(AD 475)에 바빌론에 거주하던유대인 학자들인 아모라임에 의해 미쉬나와 바빌로니아 게마라의 집성을 통해 편찬되었다.랍비 아쉬가 편찬을 시작하였고 그의 제자 랍비 라비나2세가 편찬을 완료하였다. 일반적으로 '탈무드'라고 하면 바벨로니아 탈무드를 지칭한다.
1. 힐렐은 바벨로니아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받았으며, 40세에 성서를 배우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성서 및 구전율법의 주요 교사들 문하에서 진보적인 학문을 공부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법률 해석가인 쉐마이어(Shemaiah)와 아브탈리온(Abtalyon) 문하에서 이스라엘 율법을 연구하였다.
2.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내에서도 율법해석에 따라 바벨로니아 출신 힐렐 학파와 예루살렘의 샴마이(Shamai) 학파, 두 학파가 존재하였다.
3. 에스라-느헤미야 시대로부터 구약성서에 관한 재해석이 실시되었는데, 점차 깊이있는 연구를 위하여 ‘해설’이라는 의미의 미드라쉬 성서학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드라쉬 해석학은 BC 200년경에 이르러 ‘반복’이라는 의미의 미쉬나 성서학으로 발달하게 되었고, BC 35년경에는 유대에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라는 두 개의 미쉬나 학파가 형성되었다.
4. 힐렐은 보다 개방적, 진취적, 대중적이었으며, 이에 반하여 샴마이는 엄격하고 급하고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
5. 샴마이는 재산권에 역점을 두고 법적인 해석에 집착했던 반면에 힐렐은 인권에 역점을 두면서 광범위하고 융통성 있는 해석을 가하였다. 샴마이의 해석이 보수적, 편협했다면, 힐렐은 진보적, 보편적이었다고 평가를 받는다.
6. 샴마이의 입장이 부유한 지방과 사제들의 심성을 반영하는데 비해서, 힐렐의 율법 해석은 율법 준수를 제의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하고 그것을 일상생활 속으로 옮겨 놓았다.
7. 힐렐은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으로 성전 제의 없이도, 실질적으로 존재 가능한 새로운 유대교 종교 운동을 바리새파 안에서 일으켜 세웠다(바리새 유대교).
8. AD 70년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모든 유대교 종파는 멸절되고, 바리새파 중에 오직 힐렐 학파만 살아남아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9. AD 70년 이후에는 바리새파와 서기관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용례에서 사라지고 랍비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으며(랍비 유대교), 유대교는 당파나 종파를 덜 강조하게 되었다.
10. 힐렐 학파는 율법에 대한 자유롭고 폭넓은 해석을 하였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에 대한 종교적, 정치적 논쟁에 있어서 관대하고 화해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11. 시므온(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안았던 사람)의 아버지인 힐렐은 BC4-6년 사이에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나시(Nasi)직에 있었다.
12. 힐렐은 탈무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율사(율법사, 율법교사)이며, 예수님 보다 먼저 황금율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 힐렐은 제 2 성전시대(BC 516-AD 70)의 가장 위대한 현자로 알려 져 있다.
미쉬나와 탈무드 형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바리새파에 속한 힐렐 학파의 창시자이다.
14. 랍비 힐렐은 평화를 사랑했고, 너그러운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인자하며, 인내심이 강하고 겸손했으며,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 그는 최고의 미덕을 지닌 본보기의 인물이었으며, 참을성 있는 사람의 전형이었고, 그는 항상 침착함과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16. 힐렐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근면한 연구원, 설득력 있고 준비가 잘된 교사, 하나님을 철저히, 기쁜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었다. 축약해서 재언하면 그는 이상적인 유대교 현자(Sage)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17. 힐렐은 탈무드 유대교에서 최초의 눈에 띄는 인물이었고, 탈무드 유대교는 구전율법에 대한 해설서인 ‘탈무드’를 만들어낸 유대교 사상과 전승을 지닌 분파이었다.
18. 그는 성서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필요한 성서 주석 원칙을 세웠으며, ‘힐렐의 7원칙’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리스 방법론의 용어를 히브리어로 옮겨 삼단논리, 추론, 연장, 비유, 은유, 평행, 모순 등 ‘미드라쉬’의 일곱 가지 기본 해석 방법론을 정리하였다.
※ 힐렐과 예수님의 유사한 언급들
힐렐은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나서 활동했고 먼저 말을 했으며, 예수님께서도 키가 자라가며 지혜가 자라갔다고 하였다. 예수님도 힐렐의 고상한 인품과 높은 학식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좋은 말을 인용하셨을 것이다.
① 예수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황금율.
힐렐: “자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아라. 바로 이 한마디에 모든 율법이 요약되어 있네. 그 밖의 것들은 그저 여기에 대한 부연에 지나지 않네.“
② 예수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힐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29:23)을 해석한 기록: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주의 영광을 저희가 받을 것이요.”
③ 예수님: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6:1)
힐렐: 남들이 있는 곳에서만 자선을 베풀고 남이 보이지 않는다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④ 힐렐: 지금이 아니면 언제냐?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 그들이 곧(즉시, immediately)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22)
※ 힐렐에 관한 일화
일화 1.
그가 성서학교에서 공부할 시절, 그는 하루 번 돈의 절반을 수업료로 냈다고 한다. 당시는 이처럼 많은 돈을 내면서 성서학교에서 공부했다. 어느 겨울 안식일 전날, 힐렐이 수업료를 내지 못하자, 학교 청지기는 그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힐렐은 지붕으로 올라가 창 밖에서 그들의 수업 내용을 경청했다. 눈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강론에 심취한 나머지, 힐렐은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지붕 창문이 좀 어두워진 것을 안 랍비 쉐마이어와 아브탈리욘이 밖에 나가 보니 힐렐이 꽁꽁 얼어 있었다.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던 쉐마이어였지만, 그는 사다리를 놓고 지붕으로 올라가 힐렐을 내려오도록 하여, 몸을 따스하게 씻어 주고, 화롯가에 불을 피워 몸을 녹여 주었다. 안식일에 사다리를 놓고 일하는 것과 불을 피우는 것은 명백한 안식일법 위반이었다. 그러나 쉐마이어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안식일을 어겨도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일화로서, 마가복음 3:4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악한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생명을 구하는 것인가, 죽이는 것인가?” 하신 말씀의 토대가 되었다.
일화 2. 힐렐을 화나게 하는 질문:
어느 날, 청년들이 모여 짓궂은 내기를 벌였다. 어떻게 힐렐을 화내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청년 하나가 총대를 메기로 하였다. 마침 힐렐이 안식일 예배를 위하여 몸을 깨끗이 하려고 목욕탕에 가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불쑥 들어오더니, 멍청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머리는 어째서 둥글까요?" 그러자 힐렐이 이러 저러하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나서 힐렐이 막 물 속에 들어가려 하자 그 청년이 다시 나타나서는, "검둥이는 어째서 검을까요?"하는 것이 아닌가!
힐렐이 검둥이가 검은 이유를 애써 설명하고 다시 목욕물에 들어가자, 청년이 또 나타났는데,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이나 되풀이 하였다. 맨 마지막에 청년은 힐렐을 향하여, "당신 따위의 인간이 없었으면 좋았을걸. 나는 당신 때문에 내기에서 큰 손해를 본단 말이오."
그러자 힐렐이 천연스레 말했다.
"내가 참을성을 잃느니 당신이 돈을 몇 푼 잃는 편이 더 낫겠오.“
일화 3. 탈무드의 페싸임 66a에 이런 내용을 언급한다:
베시리아의 아들들이 연합하여 산헤드린의 나시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힐렐의 고상한 지식과 인격에 압도되어 그들은 힐렐을 추대하여 지도자로 모셨고, 스스로 산헤드린의 의장의 자리를 즐거움으로 떠났다고 한다.
참고인용: https://m.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paul3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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